지리산 피아골 단풍기경

주말 비가 온다는 일기 예보 탓에 노삼초사 하는 마음으로 잠을 설치고 현관을 나오는데 쓸데없이 뒤 따라 나와 짖어대는 우리집 시추 애완견을 발로 걷어차며 서두른다.

아픔이 뇌골까지 와도 비명도 못내고 웅크리며 불쌍하게 두눈만 껌벅 거린다.

이른 아침이라 우유장수 아줌마가 얼핏 지나간다. 눈길이 마주치자 무안해서 머리를 얼른 돌린다.

일각이 여삼추라 했는데 한아파트에 사는 윤홍기 소장은 왜 이리도 늧는지.. 먼동이 채 뜨지도 않은 시간인데도 벌써 몇분째 단지내 길가에 나와있다.

아침잠을 깨워 부산하게 움직여 준비하고 나올 채비를 하느라 늧는 모양이라고 이해하지만, 기다림에 치친다. 잠시후 단지내 슈퍼앞에 미끄러지듯 윤홍기소장 차가 멈춘다. 급히 채비를 꾸려 나오다 보니 윗도리(점퍼) 도없이 나왓길래 “지리산은 여기하고 날씨가 달라 춥다고 말하니” 점퍼를 다시입고 나와 장유문화원 에 도착하니 일행들 몇몇이 삼삼오오 모여 우릴 반긴다.

산행대장께서 조금 늧게 차량이 도착 한다는 전갈 전화를 받고 기다리는데 마음먹고 저 멀리 전라도 지리산 산행을 설파한 산행대장님 얼굴이 스친다. 무안하기도 허전하기도 씁쓸하기도 한 단풍색깔 얼굴이다. 예정된 시간보다 10여분 지나서 우리들을 태우고갈 애마가 문화원 입구 도로변에 미끄러지듯 멈추어 선다.

차에 오르니 김해에서 미리 탄 일행들이 반갑게 수인사를 건내고 좌석을 살펴보니 공석이 많다. 출발이다. 잘 딱힌 고속도로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통쾌하고,상쾌하고,유쾌하다.

고속도로의 주변 황금 들녁과 밋밋한(?)산들이 머리를 찌뿟이 치들고, 미리 선점한 대형버스들 사이에서 마중울 한다. 하늘과 맞닿은 산자락의 나무들의 자태가 선남선녀들의 마음을 움직이게끔 화사하다.

기대감과 황홀함에 젖어 있는 사이, 산대장님이 하나 종합 황찬준 사장님이 찬조 한 고래 고기를 내어 놓고 장 영 소장님 은 고급 와인을 찬조하여, 아침부터 술판이다. 침묵만이 감돌던 차안이 왁자찌껄 분주하다. 고래 고기를 쓸고 막걸리도 내어오고 뒷자석에는 삼삼오오 모여 니기 한잔 내가 한잔 나도 한잔 사랑주가 춤을추고 사람들을 홀쳐맨다. 희희낙낙~~하는사이 어느듯 성삼재 휴게소에 토산회 알짜베기 건각 26인을 토해낸다.

성삼재에서 바라다 본 노고단은 해산하신 어머니 퉁퉁 불은 젖가슴처럼 볼록하니 지척이다. 성삼재(1,090m)는 전북 남원시 산내면과 전남 구례군 광의면을 잇는 고개다. 피아골로의 산행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등로는 휴게소와 주차장 사이 산책길로 열려 있다. 임도를 따라 35분쯤 오르니 노고단 대피소다. 노고단 대피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또 다시 돌계단이다. 돌계단으로 8여분을 오르자 노고단 고개다. 다시 나무계단을 10분쯤 오르자 노고단 정상(1502m)이다 . 노고단 원래의 정상석과 돌탑이 시선을 끈다. 저멀리 천황봉의 깎아지른 절벽과 암봉들이 한 폭 동양화를 연상케 하고 반야봉이 손에 잡힐 듯 시원하게 펼쳐진다. 휘이잉~바람이 몰려온다.

땀흘릴때는 몰랐는데, 정상에선 바람은 추위를 엄습한다.

해경씨가 유난히 풍광이 좋은 곳을 배경삼아 사진을 박아 달란다. 그래, 까짓껏 얼마든지 박아주지. 찰깍~ 00방 만큼은 아니라도 이정도 할수있지..ㅋㅋ...

음탕한 마음과 무안함에 들통난 위인(?)이 되여 그냥 줄행랑이다. 머리위를 맴도는 솔매 한마리의 배웅도 마다한채 그냥 하산키로 발이 재촉한다. 노고단 고개로 내려서서 우측 등로를 따라 내려서니 부드럽고 완만하게 이어진다. 길도 외길이라 부담없이 진행 된다. 멧돼지가 많이 출몰하여 돼지령이 라는 돼지령까지 20분, 돼지령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돼지령 양지 바른 곳에 26명의 인원들이 2줄로 정겨운 식단을 준비한다 .식순에 따라 각자 꺼네 온 베낭을 푼다. 묵직한 베낭속에는 사랑도 있고, 눈물도 있고, 청춘도 있고, 한숨도 있다. 참말로 많은 사연을 담고 있다. 김밥, 도시락,잡곡밥, 불고기, 상추쌈,팥죽,카례라이스,막걸리 부침게 후식으로 과일,옥수수 등등이 호텔 뷔폐식 보다 더성찬이다. 구수한 냄새를 맡고 어디서 날아 왔는지 말벌 한마리가 밥상 주위를 맴돈다. 다들 배가 고픈지 개걸스럽게 먹어 치운다.

사랑주 한잔을 높이들고 하늘을 보니 잿빛 하늘이다.가을이 익은 산허리춤에서 피어나는 운무는 연기처럼 순식간에 사라진다. 눈이 부셔 옆을 보니 억새가 한눈에 들어온다. 한줌 실바람이라도 스치면 파르르 몸살을 앓듯 가녀린 여인네의 자태마냥 서럽도록 아름답다. 이 억새는 어둠침침한 날에는 뼈에 사무칠 정도로 스산하다가 이내 개면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이 부실 정도로 화사하다. 감성적으로 몰아치는 소용돌이를 애써 눌리고 성철소장이 건내준 뽕술(오디주)을 홀짝 마신다. 가슴폐부 까지 찌릿하게 아려온다. 이 좋은 지리산에 산행을 하면서 즐거움 으로 방향 전환 해야 겠다는 기분으로 감격주를 또 홀짝이다. 간밤에 "한약 묵는데 오늘은 술을 묵지 마라"는 마눌의 당부(?)도 가냘픈 기억에서 빠져버리고, 또 한낫 미물인 꿈틀 거리는 지렁이가 된다. 미안 혀~마눌! 다, 인연이고 살아 가는 정이고~겁이고....세순배의 술잔에 머리가 돌고 땅도 돈다. 산 정상에서 마시니 하늘도 돈다.구름이 따라 돈다.

다시 하산길이다. 내리막길이 오히려 겁난다. 무릎에 무리가 많이 간다. 동행한 친구 홍기(고향이 멍청도인데 양반이다)는 발목이상이 왔는지 뒤뚱댄다. 심성이 매물도 바다보다 더 넓고, 잔정과 인정은 타고난 사람이다.

윤 홍 기 소 장 자기는 3시간 이상 걸으면 무릎이 고장 난다고 걱정이 태산이라 2km 정도 만 내려가면 된다고 안심을 시켰는데 연곡사에서 입적을 한다면 그 원망 다 어찌 감당을 할꼬?? 낭폐 아닌 낭폐라 난감하다 .

하산을 재촉한다. 계절의 변화를 모르는 후박나무잎은 더욱 새파랗고, 제 이파리를 미리 떨쳐버린 참나무는 우람한 체구 만큼이나 여유로와 보이고, 계절에 민감한 단풍나무는 같은 잎사귀인데도 익은놈과 안 익은놈과 상존을 하고 있다. 청명한 가을의 빛깔에 물든 지리산 산세는 푸르다 못해 파랗고, 붉지 못해 빨갛기도 하다만 높디 높은 가을 하늘은 뉠 휘감아 우는지 종일 웅웅거린다. 바람 소린지, 지가 서러워서 우는 소린지, 한 맺힌 피아골의 피가 솟구쳐 오르는 소린지.......끝도 없이 이어지는 피아골 계곡은 깊고 푸르다. 굵은 소나무와 단풍나무 사이로 난 계곡은 여느 계곡과는 다르다. 곳곳에 있는 물웅덩이는 한 숨울 쉬게 하고, 커다란 바위가 여기저기서 손짓을 하고 있다.

능선에는 마지막 가을을 재촉이나 하는 듯 나무가지 마다 울긋 불긋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과 같이 형형색색 군상같고 어눌하게 누운 갈대의 모습은 저물고 있는 청춘을 보는것 같아 서운키도 하다. 하산길 내내 돌부리에 차인 발이 돌길을 밟고, 돌을 보며, 돌밭에서 놀고 있다. 그 돌이 지리산 피아골 돌밭이다. 40중년 여인네의 속눈썹 만큼이나 깊은 계곡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여 피아골 대피소에 도착 한다.

대피소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다. 휘늘어진 나뭇가지밑 바위에 몸을 맡긴다. 뒤 따르던 박종해 소장은 어느새 구름새로 사라진다. 총알을 달았다. 날다람쥐다. 회색빛 눈흘림으로 나무가지들이 미풍에 사이 사이에서 서로 춤을 추고 낙엽 밟히는 소리와 함께 화음을 이룬다. 거친 길을 헤치다 보니 배낭 옆 주머니에 까지 낙엽이 들어가 부스럭 소리를 낸다. 낭만의 소리고 가을의 소리다. 이소리는 어머니 품속 같은 푸근함(안락함)과 넉넉함 의 소리다.

자~하산이다. 호령소리는 요란하다.김우현 소장의 목소리다.

노고단 천둥소리보다 더 크다. 황현수 소장이 지금부터 하산길은 좀 쉽다고 한다.그러나 4km 이상을 가야한다.서두르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 가자.가자.가자.~ 바람에 까불대는 깃대마냥 줄행랑이다. 용인에서 왔다는 동행인이 말을 걸어온다.깨소금 맛이다. 산행에서 이방인에게 말거는 재미는 이쁜여자에게 수작거는 것 보다 더 재미있다. 바삐 움직이니 땀에 흠벅 젓는다. 사타구니 사이가 뻑뻑하다.

구계포교에서 바라본 피아골 계곡 물웅덩 이와 암석이 선계의 풍광을 연상 시킨다. 샛빨간 단풍들은 계곡의 물까지 붉게 물들인 듯 하다. 계곡물소리가 더 울어 댄다. 울어 대는 계곡물이 고통스런 이 마음을 아는지 손짓을 한다.

헉헉... 숨가쁘게 뜀박질로 한참을 내려오니 표고막터다. 표고막터를 지나 다리를 건너자 임도 수준의 넓은 길을 나오는데 직전마을까지 1km 라고 쓰여있다.

다시 그 길을 20분쯤 더 걸으니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직전마을을 지나자 연곡사가 보이고 매표소를 지나자 대형버스 주차장이다.

주차장에서는 잔치 준비 중이다. 먼저 하산한 박종해 소장이 대형 찜통에 물을 1시간째 끊이고 있다. 주방장이 올때 까지... 오늘 메뉴는 오뎅 탕이다. 긴 한숨과 지친 육신을 앙갚음이라도 하듯 소주, 막걸리에다 고래고기 문어로 하산주 를 먹는다. 먹어본 사람만이 기똥찬 그맛을 안다.

피아골 울창한 숲 아래 흐르는 계곡물은 늘 산과의 이별을 노래 부르며 흘러간다. 어두움이 깔려오는 시간, 차에 올랐지만 미련을 안은 시야(視野)는 지리산 피아골에 오래 머물려 있었다. 동행하신 토산회 회원 여러분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수고 했습니다. so long~~